Monthly Archives: December 2013

고민은 깊게 실행은 빠르게

어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지 한참 되었는데 전보다 실행으로 옮길지 여부를 판단하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아마 무대포로 저지르기보다 신중한 고민이 더 필요함을 느꼈기 때문이겠지만 나답지 않게 과도하게 신중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어찌보면 나와 회사를 계속 살아 숨쉬게 한 원동력이 그 추진력 때문이 아니었는가 싶은데 내가 그간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상당히 조심스러워진 것 같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생각없이 그냥 하고 싶어서 뛰어드는 것보다는 다각도에서 깊이 고민하는 것이 좋겠지마는 적어도 실행만큼은 예전의 속도를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고민이 늘어지면서 실행의 속도도 함께 늘어지는 것을 느낀다.

계속 웃고 만나고 떠들자

잠이 안와 뒤척이다 핸드폰 사진을 들추어보니 올 한 해도 참 많이 웃고 사랑을 하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 사람들을 만나고 배우고 먹고 마시며 살았구나 싶다. 참 하루하루는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었던 것 같은데 그런 올해에도 어김없이 웃을 날은 있었고 기쁜 날도 분명히 있었다. 침전하지 않고 성장하는 사람이 어디가 있으랴. 언제나 승승장구 하기만 하는 회사도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모두가 나를 내리려고 합심하여 혈안이 된 것 같았던 올해에도 어쨌건 웃고 사람 만나고 떠들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 쉬운 일이었다면 나에게 성공한 선배가 훨씬 더 많아야 했으리라.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오늘만 살 것처럼 최선을 다하자.

사랑을 시작할 때

내가 무슨 그렇게 대단한 자격이 있다고 사람을 재단하고 평가하고 하여 조금이라도 아닌 구석이 있으면 금세 끊어버리고 했던 것 같다. 최적은 없는지도 모르는데 최적을 찾기 위해 한두가지만 빼면 완벽한 사람들과 함께 보낼 수 있었을 현실 속 행복을 걷어차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조금 더 오만한 물이 빠져야 쓸만해질 것이다. 다시 모든 것을 스물둘의 불안했던 처음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 좋으리라. 그리고 사람을 만날 때 부족한 구석이 보이면 내 가슴에 손을 얹고 ‘그런 나는 부족한 것이 없는가’ 자문하는 것이 옳으리라.

하늘에서 보다

지금은 홍콩에 와있다. 스물두살에 별 생각 없이 사이트 하나 연 이후로 한 번도 쉬지 못하고 다음주면 서른이 된다. 남들 다맞는 서른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지만 쉬지 않고 달렸던 나의 20대를 마무리 할 약간의 여유라도 가져야겠기에 처음으로 일주일 휴가를 쓰고 주말을 포함해 열흘간 서울-런던-파리-스트라스부르-파리-서울-홍콩-서울로 이어지는 여정을 소화하고 있다.

여행 온 첫 날부터 느낀거지만 한 발짝 빠져본다는 것은 안에서 아웅다웅 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값진 경험이다. 2,3일 뒤로 빠져서 보고 다시 들어가 2주 노력하는 것이, 안에서 4주 노력하는 것보다 훨씬 의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여러 사정으로 당분간 다시 휴가를 못떠나겠지만 나중에 모든 주변이 정리되면 여행을 삶 속에 정례화해 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여행을 떠나기 전 주에 만난 어느 선배는 나에게 “우리 이전에 수십억년의 역사가 있었고, 우리 이후에도 또한 수십억년의 역사가 있을진데 기껏해야 100년 살다 가면서 두렵거나 부끄러워서 무언가를 못해본다는 것은 너무나 아까운 일”이라고 했다. 스쳐 지나가는 말이었는데 나에게는 강렬하게 와닿았다. 우리 업계 선배가 아니라 패션으로 일가를 이룬 선배의 말이었는데 확실히 다른 쪽 사고를 하는 사람들을 만나야 내 사고의 지평도 넓어지는 것 같다.

여기 여행와서의 일이다. 혼자 대영박물관에 갔는데 나는 이때껏 살면서 듣도 보도 못한 ‘리키아’라는 나라의 유물과 벽화, 심지어 신전이 그대로 뜯겨 전시되고 있었다. 설명을 보니 기원전 6세기쯤 지금의 터키 영토 어딘가에 있던 나라라는데 영국 고고학자에게 발견되어 몽땅 옮겨진 것이었다. 그나마 운좋게 영국에 발견되었으니 사람들이 많이 찾는 대영박물관에 전시라도 되지, 그도 아니었으면 2,600년이나 지난 지금 내가 리키아란 나라에 대해 알 수 있었겠는가 싶었다. 그들의 벽화를 자세히 보니 사는 모습이 지금이랑 크게 다르지가 않다. 밥 먹고 옷 만들어 입고 놀고 자고 애 키우고 채집하고 그런 일상의 풍경이 기원전 6세기에 벽화로 그려져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위의 선배의 말과 교차되면서 순간 아찔했다. 지금의 나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그나마 우리가 아는건 리키아라는 나라 정도이지 그 때 그 나라를 살던 사람은 전혀 누군지도,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있었다. 먹고 마시고 울다 웃다 먼지처럼 사라진 벽화에 그려진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랑 별반 다르지 않은. 그렇다면 과연 나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2,600년이 아니라 200년만이라도 존재가 먼지처럼 사라지지 않을 삶은 무엇이 있을까? 그것이 이번 여행이 남긴 가장 큰 화두다.

앞으로 수십억, 뒤로 수십억년 사이에 낀 100년 남짓한 작은 시간과, 비행기를 타고 오며 운해 위로 보이는 선명한 별들과 그 위의 드넓은 우주, 그리고 운해 너머로 보이는 히끄무레한 지평선 사이의 어느 애매한 공간에 떠있는 ‘나’라는 시공간의 점은 무엇을 해야 그나마 100년을 의미있게 살 것인가에 대해 많은 회의가 있었다.

이제 여정을 마치기 이틀전, 이 새벽 홍콩에서 다시 열흘간 일부러 멀리하던 뉴스를 보고, 이메일을 읽으며 지극히 시시콜콜하고 사소한, 그러나 잘 해내야 하고 이미 익숙해진 나의 일상 속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항상 나 자신과 주위에서 하루하루 벌어지는 사소한 일들에만 집중하며 살았지 무한한 시간과 공간 속 작은 점으로서의 나를 인지한 것은 이번 여행이 준 가장 큰 축복이자 가장 큰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시공간의 점이라는 이유로 허무주의에 빠지면 안될 것이다. 시공간의 점이기 때문에 오히려 조금 큰 방점이나 선 정도가 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게 옳을 것이다. 돈을 많이 벌어 전 인류를 진보시키는데 그 돈을 쓴다거나 그나마 후세가 발견하고 기억할 확률을 높이기 위해 조금 더 부강하고 오래 가는 나라를 만드는 것, 그리고 나보다 조금 더 오래 살 사람들에게 내가 생각하는 바를 전해주고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을 조금은 더 이 세상에 많게 하는 것. 결국 잠깐 살다 먼지처럼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 있어 최대한의 경험과 기쁨과 슬픔, 행복과 좌절을 모두 다 풍부하게 겪으며 사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을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며 나와 함께한 시간을 조금 더 오래 추억해 줄 가족을 만들고 사랑하는 것.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멋진 일들을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도전해 보는 것. 그것이 내가 이 시공간의 점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이 아닐까 한다.

그러고 보면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가. 생각할 수 있는 동물로 태어나 매일 고민하며 한 발짝씩 겨우겨우 진보하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이 시공간의 차원에서 볼 때 그저 작디작은 점일 뿐이다.

많이 경험하고, 친구들과 즐거운 교류를 나누고, 가족과 연인을 사랑하고, 보람을 느낄 일을 찾고, 앞의 다른 것들을 잃지 않을만큼의 돈을 벌며 최대한 오래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그나마 점으로 태어난 내가 만들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삶이 아닌가 한다. 그러다 수천년이 지나서 리키아처럼 아주 운이 좋게 나와 내가 남긴 것들의 흔적을 발견하는 이가 있다면 그건 덤이리라.

나는 다시 하늘에서 내려와 하루하루가 전쟁같은 일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30대의 생각의 지평은 아마 조금은 더 넓어질 수 있을 것 같다.

자아 과잉

SNS를 보다보면 자아 과잉인 사람들이 꽤 있다. 물론 살포시 받아보기를 끊지만 그런 사람들은 그리 많지도 않은 식견과 경험으로 이 업계 전부를 이해하는 것처럼 글을 쓴다. 너무나 편협한 관점이다. 자기 것에 뭘 쓰든 내 오지랍일 수 있지만 적당히 붙잡아주고 싶은 이들이 있다. 아주 친한 친구라면 붙잡고 혼이라도 내겠는데 그러지도 못하고 그냥 올라오는 그 나름의 ‘insight’에 피식피식 웃게 된다. 나도 선배들이 볼 때는 똑같이 그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문득 걱정이 된다. 자아 과잉도 안좋고, 자아 멸시도 안좋고 뭐든지 적당한 것이 좋은 것 같다. 그 적당한 선을 스스로 느낄 수 있으면 되는데 그 선을 모르겠다면 단호하게 말해줄 친한 친구나 동료들을 가까이 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아무리 자아가 흘러 넘치더라도 결국은 다같이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는 곳이므로 이곳은..

속물이 되지 않도록

이 세상에 남 무대에 서는 것을 욕하는 사람치고, 막상 자신이 똑같은 무대에 설 기회가 왔을 때 거절할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살면서 그런 위선을 정말 많이 본다. 자기는 전혀 그런거 하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 행동하다가도 막상 같은 기회가 오면 얼른 붙잡는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인가? 결국 나도 갖고 싶은 것을 나와 비슷한 사람이 갖게 될 때, 자신은 그것을 원래 갖고 싶지 않았던 것처럼 비난해야만 자신의 못가짐이 합리화되므로 그리 행동하는 것 같다. 자기가 그것을 취하게 되었을 때는 온갖 미사여구로 자기가 취하는 것은 자기가 욕하던 대상이 취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설명하며 합리화하지만 결국은 원래부터 갖고 싶었던 것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그런 사람들이 꼭 있는데 심지어 그런 사람이 일반인들의 존경도 많이 받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군상의 옹졸함이나 속물근성 같은 것도 느껴진다.

어쨌든 나는 그래서 더욱이 내가 갖고픈걸 먼저 가지고 있는 남을 괜히 비난하지는 않기로 다짐한다. 부러운 것은 그냥 부럽다고 이야기하고 그 사람이 존경받는 것에 비해 실제론 나쁜 사람이라던가, 아니면 속물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속일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 충분히 인정을 하고 비난하지 않기로 한다. 설사 비난받아 마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물며 그 사람도 나름의 사정과 고충이 있었을 사람인데, 특별히 예수나 부처같은 삶을 산 것도 아닌 내가 그 사람을 비난할 자격이 있을리 만무하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비난하지 않기로 한다.

오프라인이던 온라인에서던 간에 남 이야기 하기 좋아하는 사람치고 겉과 속이 한결같은 사람이 잘 없었던 것 같다. 어찌들 그리 자신은 깨끗하고 정직하게 살아오셨는지 남이 조금만 실수하거나 튀거나 잘못하면 득달같이 달라 붙어 까기 바쁘다. “소문이 이렇게 저렇게 들리더라..” 열심히 소문을 전파하는 사람을 보면 결국 그 소문의 진원지는 그 사람 자신이다.

속물근성. 결국 다 이걸로 설명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진짜로 사회 정의를 위해 남 잘못한 소문을 퍼나르는 사람은 의외로 흔치 않다. (본인은 사회 정의를 위해 그러는 것처럼 포장하겠지만.) 결국은 다 내가 갖고 싶은 것을 먼저 가진 나와 별반 차이가 없는 사람에 대한 시기와 질투에서 발현된 까내림의 욕구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해서 올라가는 사람이 더러 있는데 아마 앞으로 대단히 청렴하게 살아야 할 것이다. 한치의 정의롭지 않음도 있어선 안될 것이고..

물론 곤란에 처한 남들에게 피눈물 주며 말과 처세로써 그 자리에 오른만큼 또 자신의 부도덕함과 부정의함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말과 처세로 합리화하고 갖은 포장으로 적잖은 세월 근사하게 버텨내겠지만 결국 긴 세월을 이기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게 끝까지 올라갈 수 있다면야 세상이 별로 정의롭지 못한 것이겠지만 사람들의 혜안이 그렇게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이야 잘 속이고 그렇게 5년, 10년, 조금 더 길면 한 20년 정도는 스스로 고귀한 ‘척’ 하며 살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세상 사이클이 돌고 돌기 때문에 결국 언젠가는 피눈물 주었던 대상들이 올라와 그때 그 시절을 잊지 않고 반드시 다시 찍어 내리게 될 것이다. 그럴 때 정말 부처나 예수처럼 살고 있지 않다면 아주 작고 사소한 일로도 결국은 자업자득 하지 않을까 싶다. 고로 가급적이면 남 비난 만들지도 전하지도 않고 잘못한 사람들에게는 째깍째깍 사과하고 너무 나대지 않고 균형감 있게 살아가는 것이 부드럽게 롱런할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나도 성질 많이 죽었지만 여전히 가끔 욱할 때가 있는데 이것도 더욱 죽일 필요가 있다.

또한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와는 무관하게 한국 사회를 산다면 결국 남들이 하지 못하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고 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남에게 비난을 받는건 위와 같은 이유로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 같다. 고로 왜 비난하냐고 스트레스 받기 보다는 나는 부처도 아니고 선비도 아닌 그냥 똑같이 실수할 수 있고 똑같은 욕구를 안고 사는 한 평범한 사람임을 남들에게 이야기하고 때때로 약간의 포장과 편집이 있을지언정 장기적으로 매사에 지극히 솔직한 사람으로 사는 것이 낫지 않겠나 한다.

결국 내가 가장 잘할 수 있고 롱런을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 솔직함이기 때문에 나는 이 역량을 잘 키우고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위에서 열거한 수많은 한국의 ‘빚좋은 속물’이나 ‘남 까대며 존경받는 멘토’로 슬프게 나이 먹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